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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지역 수군진을 찾아내다(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 =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배)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진행된 경기지역의 조선시대 수군진 조사·연구 성과를 담은 「조선시대 수군진조사Ⅴ: 경기지역」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해양문화유산 종합학술조사연구사업의 일환으로 2007년부터 지역별 조선시대 수군진에 대한 조사연구 성과를 정리한 「조선시대 수군진조사」 연작(시리즈)을 발간해왔다. 이번에 발간되는 「경기지역」편은 「전라우수영」(2012), 「전라좌수영」(2014), 「경상우수영」(2016), 「경상좌수영」(2018)편에 이은 다섯 번째 보고서이다. 경기지역의 수군진은 방어체계의 재편이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설치와 이동이 잦았다. 이를 고려하여 이번 보고서에는 경기지역 중에서도 이미 조사가 끝난 강화도*와 근대에 설치된 일부 수군진을 제외한 10개의 수군진*을 엄선하여 수록하였다. * 강화도에 대해서는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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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돌목에 스며있는 충무공의 호국정신의 뜻을 가진, 명랑노도명랑노도 사진출처: 해남군청 (해남군=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울돌목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조선을 구한 ‘명량대첩’의 승첩이 이루어진 곳이다. 문내면의 학동과 진도 녹진 사이의 약 2km 협소로 가 명량해협이다. 해로의 수심은 약 20m이며 넓은 바다에서 좁은 해협으로 들어오는 조류에 따라 급물살을 이룬 곳이다. 문내면의 전라우수영은 조선 초기(1440)에 조선 수군이 주둔하는 전라 수영이 설치되었고, 전라 수영은 세조 11년 (1465)에 전라 수군절도사 영으로 승격 서 남해안이 너무 광범위해 성종 10년(1479)에 순천 내래 포(內禮浦:현 여수)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영이설치되어 이곳은 전라우도 수군절도사영(약칭 전라우수영)이라 칭하게 되었다. 전라우수영 앞바다인 울돌목은 정유재란 때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왜선을 맞아 대승을 거둔 조선 수군 3대 승첩 질의 하나로인 명량대첩의 승리의 현장으로 임진왜란의 7년여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곳이다 명량(울돌목)은 문내면의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물살의 빠르기가 평균 11.5노트(1초에 5.7m 정도)에 이른다. 우수영에서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무형문화유산인 우수영 강강술래와 무형문화유산인 부녀 농요가 전승 보존 되어오고 있다. 거북배 유람선이 명량대첩 승첩 질의 해전 루트를 따라 장군과 휘하의 병사, 그리고 민초들의 호국정신을 계승하고자, 벽파진까지 운항하고 있어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울돌목 물상 체험을 할 수 있다. 전남 해남군 명량대첩축제에서 명량대첩을 재현한 행사. 사진출처:명량대첩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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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 전략회의 여기서 열렸다"…해남군, 전라우수영 발굴전라우수셩 발굴 터 명량대첩 전승지인 전남 해남 전라우수영의 관아터 내아와 동헌, 진출입 시설이 발굴조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해남군은 올해 5월부터 국가 사적 제535호인 해남 전라우수영 발굴조사를 벌여 축대와 담장 등으로 둘러싸인 관아와 우수사가 기거했던 관사인 내아(內衙)와 집무실인 동헌(東軒) 건물 일부를 확인했다.관아로 향하는 도로망의 진출입 시설과 건물 축조를 위한 토목과정과 중심 관아 영역 밖의 건물 등도 드러났다.우수(右水)란 글자가 새겨진 백자·기와·동전 등 유물 수백여 점도 출토됐다.해남 우수영은 조선시대 전라우수영이 위치한 곳이다.세종 22년인 1440년 설치돼 1895년(고종 32년)까지 약 450년 이상 유지된 군사적 요충지이다.임진왜란 당시 전라우도 연해지역을 관할했으며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의 대승을 거둔 울돌목 해협도 인근에 있다.발굴조사에서 나타난 내아 영역은 명량해협이 보이는 능선 일부를 절개·성토해 대지를 조성한 후, 외곽에 계단식 축대와 담을 둘러 주요 건물의 위상을 극대화했다.건물 2동은 온돌이 있는 구조로 15세기 후반에 축조되며 16∼17세기에는 4동으로 늘어난다.중심 건물은 4칸 규모의 'ㅁ'자 형태로 한가운데 마당(중정 中庭)을 갖추는 구조로 확인됐다.’ 전라우수영 전경 동헌 영역은 현재 건물지 일부와 축대·진출입로가 나타났으며,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행각(行閣·건물 입구 또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복도)도 드러났다.특히 동쪽 주 출입로는 근대까지 이용했던 곳으로 명량대첩 당시 이순신 장군을 포함한 수많은 장수가 모여 회의를 하기 위해 행차했던 곳으로 여겨진다.출토된 유물인 분청·백자·명문와·동전 등을 통해 건물의 연대·성격을 파악할 수 있었다.초기 백자는 중앙 관요에서 생산한 것으로 여러 점에 우수영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지방관요 출토품도 여러 지역에서 상납 된 것으로 파악된다.오는 10일 현장 설명회를 열 예정인 해남군은 이번 발굴조사가 전라우수영의 경관 복원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군 관계자는 8일 "전라우수영은 전라우도 수군의 본영으로서 해전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이순신 장군 유적의 중심지"라며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전라우수영의 전모를 추적해 역사적 위상을 제고하고 대국민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기사발신지 : 연합뉴스